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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의 법정에서 피고로 서다. 조영만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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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법정에서 피고로 서다.>





불행한 대통령의 나라, 한국에서 두 번의 치명적인 '서거'를 경험했습니다. 한 분에 대한 기억은 '공포'였습니다. 어느 날 대통령이 하수인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5,000년 한반도의 지긋지긋한 가난을 몰아낸 구국의 영웅이었고 한마디로 그는 '국부國父'였습니다. 그가 만든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고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하나의 국부를 모시는 땅에서 서식할 수 있던 강제된 조건이었습니다.

가난은 죄罪였고, 쓰레기차에서 아침마다 틀어대던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소음은 마치 돈과 부에 대한 한풀이처럼 한반도를 강박하였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 아니 이밥에 쇠고기 국 먹는 일이 생명과 행복의 '질質'처럼 맹신되었습니다.

그 덕에 우리는 잘 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의 물음은 자연스럽게 삭제 당해야만 했습니다. 생각은 안 해도 됐으니까, 생각은 국민이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만 생각하고 국민은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잘 살게 되지 않았느냐? 그러면 입 다물어라."

그렇게 성공만 하면, 출세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나라, 한국. 안되면 되게 하는 것도 미덕이고, 지배자가 원하는 것만 보고 읽고 들으며 순응의 세월을 산 까닭에 이 땅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한국식>으로 잘 살 수 있는지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양심적으로 살아선 안 된다는 사실을... 그래선 절대로 성공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사는 일을 자랑하는 것은 무능의 변명으로 여겼습니다. 부도덕한 집단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부정의 방식이 득세의 지름길로 공고히 되자, 그런 세상에서는 정의를 말한다는 일이 우스워져 버렸습니다. 정의를 말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없는 세상에서는 관용도 없고 배려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는데 누가 누구를 관용하고 배려할 수 있겠습니까? 끊임없이 약자가 강자를 견디어내는 것, 그것만이 이 땅의 배려요 관용의 전부였습니다.

부富도 늘었고 분명히 삼시 세끼 이밥에 쇠고기 국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부족했습니다. 여기에 추가된 불행의 사실은 아무도 양심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과 바르게 산다는 일의 간극이 갈수록 더 벌어지게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국부가 죽고 30년이 지난 다음 대통령을 뽑을 때에도 국민들은 양심을 선택하지 않았고 도덕과 정의를 선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철학의 문제요, 정신세계의 문제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경제'와 '성공', '개발'과 '발전'을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압도적으로 뽑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루'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렇게 경제를 일구고 성공과 개발을 일구었지만 정작 나는 정작, 돈 말고는 왜 행복하지를 못한가?를 묻는 '용기'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경제발전이 되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인가? 감히 인간의 행복, 을 말한다는 일에는 돈 말고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양심>, <정의>, <배려>, <이해>, <도덕>, <관용>, <상생>, <참 살이> 따위의...

하지만 기득권, 굳이 이야기 한다면 '재벌', '언론', '3류 지식인들', '지역을 등에 업은 정치인들', 그들은 이런 말을 싫어합니다.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이들은 다르다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관용' 곧 다름에 대한 생태적 배척만이 생존의 '카르텔'이었던 집단들에게 너무나 '다른 사람'이 등장한 것입니다.

빈농에, 고졸자에, 자존심과 도덕성 말고는 내세울 것 없는 변방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그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말입니다. 그는 대통령이었지만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었고, 그는 대통령이었지만 가장 놀림을 받은 대통령이었고, 그는 대통령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가장 <상식적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수백 명을 죽이고도, 수천억을 받고도 멀쩡히 골프를 치고 돌아다니는 나라에서, 또 그런 사람의 동상과 공원까지 세워주겠다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 노무현, 그는 가장 상식적인 사람이었지만 가장 "비상식적인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저의 생애에 두 번째 맞는 대통령의 '서거'는 안타까움입니다.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 섧은 사람 위해서라도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다 접어주었다면, 가난하고 능력 없어도, 바르게 살고, 정직하게 살고, 겸손하게 살고, 성실하게 살면 잘 살지는 못해도 행복하게 살 수는 있는 법이라고, 행복이란 것이 무슨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양심과 정의와 평화를 이루며 사는 길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당당할 수 있어야 했는데... 첫 번째 서거에서 철없이 흘리던 눈물이 지금은 왜 울 수 밖에 없는지, 이 대한민국의 황망한 '정신세계'를 보며 눈물 흘립니다.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가치들이 어질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이란 것은 어떤 목적에 도달한 이들의 것이 아니라 생명과 양심의 참된 질서를 지키고 존중하며,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살아 지켜내는 이들의 몫임을 기억합니다.

"양심과 정의" 이 두 글자를 써놓고 한참을 멍하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다시 또 이 두 글자를 두고 고민하게 해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언제쯤 이 두 글자를 아주 중요한 것으로 대접할 수 있을까?

매서운 양심의 법정에 추한 피고인으로 다시,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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