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eo25.net site

    www.eo25.net  site   


 

 










 

 

 

    © 2004 JOSEPHUS Ri. All rights reserved


Category

  eo2525
 Untitled_4.jpg (2.34 MB), Download : 73
 소록도 중앙공원

.

조영만 신부가 마지막 공적비에 나오는 수녀님들에 대한 강론을 섰내요.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마리안느, 말가렛따 수녀님께>

수녀님들, 안녕하세요?
제가 수녀님들을 처음 뵌 건 1997년 소록도의 겨울 문턱쯤으로 기억합니다.

그 시절 저는 세상에 냉소하며 불평과 불만을 칼날처럼 품기만 했던, 그러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목매며 살던 비겁한 청년이었습니다. 겉은 뻔지르르했지만 실은 뭘 해도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닫고 길을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막장을 찾는 기분으로 소록도를 찾았고 거기에서 만난 당신들은 그저 남의 나라 땅 나병환자들을 치유해주시는 맘씨 좋은 외국인 간호사 할머니에 불과했었습니다.

며칠만 머무르려했던 소록도에서의 시간은 제 뼈 속에 인鱗처럼 박혀있던 독기들을 하나 둘 빼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은 흘렀고, 제 스스로 불행하고 불공평하다 단정했던 모든 이유와 탓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음을 기어이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80평생을 문둥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버림받은 나환우 어르신들을 뵈며,
그러면서도 그 내려앉은 입술에서 은총과 축복이라는 단어가 쏟아짐을 들으며,
저주와 원망으로 열 두 번도 목숨을 끊었을 그 인생들이 도리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실 적마다, 제가 품었던 모든 원망과 불평들은 저를 하염없이 부끄럽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록도에서 오히려 제가 치유를 입었습니다. 사지는 멀쩡하고 얼굴은 성할지 몰라도 마음보가 한 없이 뒤틀어져 있던 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나환우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오히려 내 탁한 영혼 보다 맑았고, 수족이 떨어져 나간 그들의 불편함이 멀쩡한 사지 육신으로 오만가지 불평과 불만 다 짊어진 저의 죄보다 훨씬 더 자유로왔습니다.

수녀님들께서는 그런 나환우들과 43년을 소록도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들은 하나의 칭찬이나 사람들의 인정을 도리어 부끄러워하셨습니다. 오히려 나환자들 때문에 당신들이 행복했다며,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들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얼마나 저 사람들의 마음 속 상처가 크겠냐고, 몇날 며칠이고 단 한 사람을 찾아가 치료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소록도 사람들은 당신들의 진료시간이면 안 아파도 수녀님들의 진료실을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들러 미군납 전지분유 한 잔을 얻어먹고는 당신들 앞에서 어린아이들처럼 투정도 하고 애교도 부렸습니다.

저는 나환우들 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던 당신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냐고 그 때 누군가 저에게 물었더라면 저는 "와서, 보라!"고, 저 문둥이들이 어떻게 치유를 받고, 저 참혹한 상처의 인간들이 어떻게 서스럼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서로가 서로를 다시금 용서하고 화해하는 저 장면 속에서, 저는 도저히 예수라는 존재가 증언했던 그 사랑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당신들의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당신들은 나환우들의 어머니요 친구요 동반자로, 스물 일곱의 나이에 발을 내디딘 그 소록도를 어느덧 칠순 할머니가 되시어 43년 만에, 소록도 병원장과 소록도 본당 신부님에게만 알린 채 가방 하나만 들고서 조용히 떠나가셨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냥 40년 전 오셨던 모습으로 떠나가셨기에, 그 가방 하나가 70평생을 살았던 한 인간의 마지막 짐 보따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재간은 그 누구에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소록도가 저에게 가르쳐준 위대한 삶의 진실을 아직 반절도 살아가지 못하는 저에게 지난 6월, 당신들의 고향인 인스부룩에서의 만남은 이제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는 어떤 <경지>를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낮은 마음, 下心의 끝은 어떠해야 하는지, 조그만 아파트와 50년 전 당신이 사시던 다락방에 다시금 노구老軀를 누이신 당신들께서는, 소록도에서처럼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지 마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마라.", 오로지 하느님이 좋아서 한 생 살았다면 하느님 눈에 들기 위해 살면 그만이라고, 그럴려면 끊임없이 "下心"하라 하셨습니다. 당신들께는 소원이 하나가 있는데, "정말로 하느님 나라 가고 싶어 죽겠다."고, 오로지 하느님 나라만 하루하루 겸손되이 기다릴 뿐이라는 당신들은 마치 유품을 주시듯, 소록도에서 들고 나오신 조그만 돌맹이 하나와 고무신 한 켤레, 그리고 당신과 띠 동갑이라며 저에게 작은 돼지 돌 인형을 주셨습니다.

수녀님, 이제 저는 살면서 간직할 것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 주고 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 하시는데, 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은 또 염치없이 글을 남기고 내 소유의 목록만 또 부질없이 늘여갑니다.

수녀님,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마침 복음,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대목을 묵상하며, 그 수많은 나병환자들을 오로지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치유해주셨던 수녀님 평생의 낮은 下心의 용서가 생각나 이렇게 편지를 핑계로, 어줍짢은 필설筆舌 부려 강론으로 또 한 번 당신들의 이름을 남김을 용서해주십시오.

신앙은 참으로 우리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깊이로 우리 영혼의 밑동을 흔들어주십니다. 당신과 같은 분들과 동시대를 살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저 또한 당신만큼만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수녀님 강건하시고, 이 세상에서 소풍 마치시기 전 꼭 다시 한 번 당신들을 만날 기쁨이 주어지길 기도하겠습니다.  

독일 에쎈에서

2009. 07. 02
조영만신부드림.







.




19   [국내] 남평 가르멜 남자수도원  eo2525 2009/05/15 1506  
18   [국내] 소록도성당 1  eo2525 2009/07/03 1059  
17   [국내] 소록도 피정의 집  eo2525 2009/07/03 2230  
16   [국내] 소록도성당 2  eo2525 2009/07/03 1107  
  [국내] 소록도 중앙공원  eo2525 2009/07/03 1325  
14   [국내] 천호성지 2  eo2525 2009/10/28 1295  
13   [국내] 천호성지 3 어름골  eo2525 2009/10/28 1598  
12   [국내] 바오로 딸 수도회  eo2525 2009/10/28 1335  
11   [국내] 백양사 [1]  eo2525 2009/10/30 1377  
10   [국내] 한성대성당 십자가의 길  eo2525 2009/11/23 1857  
9   [국내] 한성대성당 [2]  eo2525 2009/11/28 2117  
[1].. 21 [22]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