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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와 함께 - 여행
2009. 08. 통권 401호



사람에 대한 여정


천주교사거리성당 이 호 요셉 신부



여행…. 무엇을 써야하나 생각만 했다. 마감은 다가오고, 원고청탁서를 곰곰이 다시 보니 ‘떠남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내용이다. 요즘, 주변의 일들이 너무 잡다하다. 신부로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아닌 세상 속 한복판의 일들에 휘말리게 되어 좌불안석이다. 두 눈 감고 모른 척 하고도 싶고, 슈퍼맨처럼 뚝딱 시원하게 해결하고도 싶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사실 ‘떠나고 싶다’라는 솔직한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그것들이 해결되어 있을까?




떠남 1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세상이 밝아지고 나서야 잠깐 잠이 들었다. 동료신부님들과 용산에 가기로 한 날이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후로부터 나에게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있다. 한 번의 방문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다. 대충 짐을 챙겨 별 준비 없이 집을 나왔다.
용산현장을 찾아가는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 간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인지 몸이 무겁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 내가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설레임이 있다. 그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용산 남일당 건물에 도착해서 분향소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방인이었다는 생각이 확 밀려온다. 낯선 영정사진, 촛불들, 정돈 되지 않은 여러 가지 집기들, 그들이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현장에서 삶아 내오는 콩물국수 한 그릇, 그들과 함께하는 또 다른 신부님들과 공동체라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 어렵고 가난한 곳에 사제가 함께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서 말이다. 순간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돌아가서 함께 있고, 사랑해야 할 내 삶의 공간.





떠남 2

여행, 떠나는 것, 가슴 설레는 내 인생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해결되지 않을 때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잊고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이다. 사람들의 취미는 참 다양하고 신부들의 취미역시 참 다양하다. 난 평범하지만 많은 여행지에서 열쇠고리를 사서 모으는 취미가 있다. 경제적이면서도 작은 것에서 주는 시각적, 이국적인 효과는 매우 크다. 혹시 나중에 작은 공간이 생긴다면 커다란 지도에 각 도시의 열쇠고리를 걸어보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심을 계획한다. 날 아는 사람들도 내 욕심에 동참하기 위해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도시이름이 적힌 열쇠고리를 사다준다. 그들의 여행의 편린을 엿볼 수 있어 참 고맙고 감사하다.





떠남 3

어렸을 적, 부모님들께서 여행하실 때마다 막내인 나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 꽤 자라서 까지도 그것이 가능 했고 또래 아이들 보다는 많은 지역을 다닐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혼자 버스를 타고 근처 사찰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 사찰들은 그 때와 지금의 모습이 너무 많이 달라져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해있다. 신부가 되고 내 자가용이 생기고 3년이 못되어 10만 킬로를 달렸고 지금은 차를 바꿔서 3년이 조금 지났는데 또 13만 킬로를 다녔다.
난 어디로 여행을 하는 걸까? 무엇을 찾아 떠나는 것일까? 내 삶의 보다 나음은 뭘까? 여행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 걸까?’와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단상이다.
1492년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로써 스페인은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다. '스페인을 잃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알함브라 궁전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구나'라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나서 근처에 궁전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 조그만 마을이 있다. 그 언덕에 가면 집시가 연주하는 프란치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궁전을 바라볼 수 있다. 마을사람들은 한 번도 궁전에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궁전을 바라보며 사는 자신들이 궁전 안에 사는 왕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을 한다. 머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감정의 갈림이다.





떠남 4

정확히 10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함께하게 된 이스라엘 성지순례, 일반적인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을생각과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는데 예수를 찾겠다고 성지를 찾는 순례자의 죄에 대한 생각을 하며 떠나게 되었다.
내 삶에 예수란 존재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참 우스운 생각일 수도 있겠다. 예수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을 신부인 나에게 예수란 존재의 비중을 묻다니, 나의 어머니는 시집와서 시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니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태중에서부터 성당에 다녔고, 태어 난지 한 달 정도에 세례를 받았다. 복사도 하고, 초등학교(미션스쿨)에서는 수녀님들에게 신부가 되라는 권유도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수도회 기숙사에서 1년 정도 지냈던 것이 커다란 계기가 되어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예수라는 실존에 대한 인식보다 주변상황이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신부가 되면 내 삶이 행복할 것이라는 어렴풋한 부르심에 대한 기대와 함께.
자의든 타의든 예수는 내 삶에 너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신부로 생활하면서 예수라는 존재는 너무나 커다랗게 내 삶의 지표가 되어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해가 더해 갈수록 인간예수는 놀라울 만큼 커다란 화두로 다가온다. ‘해방돌이 예수’라는 조그만 만화책이 있다. 신학교에 입학해서 이 책을 보면서 가슴 설레는 예수에 대한 뜨거운 체험을 하였다. 신성을 간직한 예수에서 인간예수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청년 예수는 민족해방을 위해 이른 새벽 나자렛 산골 집을 나선다. 소외된 자, 억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알리기 위해 첫 여행을 시작한다. 나자렛의 초라한 집을 방문했을 때 집을 떠나는 청년예수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였다.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하다.
이스라엘에는 숱하게 많은 성지들이 있다. 어떤 곳은 거의 사실이라고 이야기 하고, 또 어떤 성지는 후대에 만들어 진 것이라고 말들을 한다.
2000년이 지난 뒤의 인간 예수에 대한 발자취는 나에게 어떤 영향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청년예수는 집을 떠나 이스라엘 전역을 다니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인간예수는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숱한 역경을 이겨냈을 것이다. 인간 삶의 질곡을 바라보며, 자신이 홀로 걸어야 할 자신만의 삶에 대한 문제를 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자렛 산골 집에서의 떠남은 그의 십자가형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이스라엘 여행에서 예수의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들을 내 가슴에 간직했다. 떠난다는 것, 내 삶에 대한 더 깊은 여행인 것이다.
  




그 숱한 여행의 종착점은 어디 일까?
우리집안에서 가족을 마지막 여행에 보내드린 것은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할머니를 보내드린 것이다. 그리고 내 나이 마흔이 가까워 오도록 집안에 장례가 없었다. 몇 달 전 사랑했던 나의 누나를 보내면서 여행의 종착점을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동창신부를 보내면서도 여행의 종착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삶의 일부’ 이자 ‘최종 여행지’…




과거의 여행이 공간이동 중심이었다면, 이제 나의 여행은 분명 ‘사람에 대한 여정’으로 바뀌고 있다. 내 삶을 보기위한 여행, 사람들의 삶을 보기 위한 여행을 하려고 한다. 좀 더 진솔하고 좀 더 삶의 냄새가 묻어 있는 종착지를 향하여 오늘도 짐을 챙겨본다.









여행자를 위한 서시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이호신부(광주대교구) 1999년 서품. 경희대건축대학원에서 성전건축을 공부하고 현재 사거리성당 주임신부를 맡고 있다.  www.eo25.net 개인 홈페이지가 있다.


들장미소녀 ::: 서로 다른 테마의 떠남과 숱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잔잔한 감동과 여행의 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대체 신부님은 못하시는게 뭐예요? 이렇게 글도 잘 쓰시고,You're so versatile!  
eo2525 ::: 별말씀을 ...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인줄 알쟎아요. ㅋㅋㅋ  
들장미소녀 ::: 정말인데!저는 칭찬을 헤프게하는 스타일이 아니랍니다^^ 열쇠고리를 수집하시는줄 몰랐네요. 다음에 해외여행기회가 오면 꼭 열쇠고리 사다드릴게요. 자동차 3년에 13만 킬로!저는 6년탔는데 8만킬로! 완전 시내주행용^^  
eo2525 ::: 밤마다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 하나봐요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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