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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와 감실의 싸움?
성당의 중심은 감실? (1)





신부님께서는 이전에 제대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면서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므로 성당 안에 들어설 때 제대를 향해 인사하는 것이 옳다는 뜻의 글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많은 본당에서는 제대가 아닌 감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알기 위해 본당신부님께 여쭈었더니, 전례 중에는 제대가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전례를 드리지 않을 때에는 감실이 중심이 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당의 중심이 때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 어쩐지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제대와 감실의 싸움?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성당들 구조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즉, 감실이 제대 뒤 성당 벽 중앙에 놓여 있거나 아니면 제대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본당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수녀님이 계신 성당은 감실이 제대 바로 뒤 성당 벽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제의방에서 나와 제대와 감실 사이를 지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제대에 등돌린 채 감실에 인사하려다 보니 갑자기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다"라고 교육받았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몸을 돌려 감실을 뒤로 한 채 제대를 향해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왠지 감실 안에 모셔진 예수님께 죄스런 마음이 들어 다시 몸을 돌려 감실을 향해서 인사를 하고서야 그 사이를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마침 본당신부님이 성당 안에 들어오셨다가 그 광경을 보시고는 수녀님을 불러 그 까닭을 묻기에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그 본당신부님 왈, "수녀님, 전례중에는 물론 제대가 중심이 되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 전례도 거행되지 않으니까 당연히 예수님이 계신 감실이 중심이 아니겠어요?" 하시더랍니다.



신학원에서 저한테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다"라고 단단히 교육받은 그 수녀님, 본당신부님 말씀을 거역하기도 쉽지 않은 일, 그래서 그 다음부터 감실과 제대 사이의 지름길을 포기하고 제대 앞으로 지나가기로 결심하셨답니다. 제대 바로 뒤에 감실이 있으니, 제대에다 절한 것인지 아니면 감실에다 절한 것인지 본당신부님은 알 수 없을 것이요, 또 한 번으로 제대와 감실 모두에 인사한 격이니 일석이조가 아니냐며 웃으시던 그 수녀님이 생각납니다. 제대와 감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진대, 오늘날 각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요?



감실에 관한 간단한 역사



제대와 감실 사이에 이러한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난 까닭을 알려면 먼저 감실이 성당을 어떻게 점령(?)해 왔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생겨난 아주 이른 때부터 미사중에 축성한 빵을 보존하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나 병에 걸려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지금처럼 성당이 있던 것은 아니고 예배드리기에 적당한 가정집에서 미사를 거행하였기 때문에 성당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제의 집에 성체를 보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됨에 따라 성당이 건축되었으나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는 여전히 성당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8세기의 문헌에는 성체가 제의방에 보관되어 있음이 나타납니다. 미사중에 축성한 빵을 쉽게 보존하고 미사 밖에서 사용될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 아마도 제의방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신심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천사주의" 또는 "윤리적 엄격주의"라 불릴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죄인의 몸으로 어찌 성체를 모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서 미사중에 영성체를 안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미사는 라틴어로 드려졌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드려지는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성찬례 자체보다는 대중 신심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미사 중에 축성된 빵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성체 안에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다는, 성체는 그 자체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신자들의 마음을 잡아당겼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영성체는 하지 않고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영광을 갖고자 열망했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열망은 결국 성찬 전례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 신자들이 볼 수 있게 받들어 올리는 예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신 성체를 성당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 모시고 싶어하여 그때까지 성당의 중심 자리에 놓여 있던 제대 위에 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실은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제대를 물리치고 성당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감실에는 화려한 장식이 따름은 물론, 예수님이 계심을 알리기 위해 언제나 빨간 등을 켜두는 관행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성당은 하나의 건축물이긴 하지만, 그 구조나 장식은 언제나 그 시대의 신학과 신심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고딕식 건축 양식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 눈길을 돌리고 그분만을 중심으로 삼았던 중세에 꽃핀 양식입니다. 화려한 장식이 주를 이루는 로코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은, 신앙 생활이 내적으로보다는 외양적인 데로 흐른 중세 후기에 발달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성당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나마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지어진 성당은 과장된 성체신심으로 인해 감실이 성당의 주인공인 양 배치되고 장식되었으며, 대부분 제대 위나 제대 바로 뒤 성당 중앙 벽에 자리잡았습니다. 영성체하기보다는 성체공경을 더 좋아하던, 신앙 생활의 실천보다는 미사의 의무를 더 강조하던, 말씀에 따라 사는 삶보다는 정적인 성체조배를 더 강조하던 당시의 신앙인의 모습이 이렇듯 감실이 주가 되는 성당 구조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잘못된 신심을 일소하고 말씀이 주가 되는 신앙, 성찬례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 생활,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하면서 전례도 이에 맞추어 개혁되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이후에 지은 소위 현대식 성당은 외양이나 내부 장식에서 변화가 있을 뿐, 여전히 감실이 주가 되는 옛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공의회 이전의 왜곡된 신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당 구조가 이러하니 신자들은 여전히 성찬례 자체보다는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공경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감실과 그 옆에 켜둔 감실등이니, 자연히 거기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아무리 말로는 말씀이 우리의 중심이다, 성찬례가 우리 신앙의 원천이다 해보았자 정작 신자들의 마음에 와닿는 것은 감실과 그 안에 모셔진 성체입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는 하나 우리 신자들의 성서에 대한 관심은 어떠합니까?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단지 주일 의무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진 감실에 비해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는 사정이 어떠합니까? 감실 안에 책이나 잡동사니를 넣어둔다면 펄쩍 뛸 우리들이 독서대는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제대마저도 소홀히 취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미사(성찬례)를 지내는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것은, 제자들이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당신을 기념하는 가운데 죽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한 당신의 모습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례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聖變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체와 성혈로 드러나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 즉 파스카 신비에 있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찬례를 지내는 우리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때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묵상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살고자 결심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의 중심인 성찬례(미사)의 본뜻이라 하겠습니다.



제대 :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곳



우리 신앙의 중심을 이루면서 모든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 되는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신자들은 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박해 시대에는 신자 가정집에 모였고 종교 자유를 얻고 나서는 교인들 모임을 위한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곧 성당입니다. 성당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기리는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한 공간이었기에 당연히 제대가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위에서 성찬 전례가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제대가 차지하는 자리가 각별하였기에 교회는 예로부터 제대에 특별한 존경심을 드러내 왔습니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식탁과 같은 형태였으나 점차 돌로 만들어 그 품위를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어떤 사정으로 돌 대신 나무로 만들 경우에도 축성한, 십자가가 다섯 개 새겨진 돌판을 나무 제대 위 홈에 안치할 정도로 제대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져 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런 식으로 제대를 만들지는 않지만 제대에 대한 각별한 존경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때 중세에는 제대가 예수님의 무덤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제대는 예수님의 최후 만찬을 거행하는 식탁이자 예수님의 희생 제사가 거행되는 제단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바로 이 제대 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점이자 원천인 성찬례가 거행되기에 교회는 제대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고, 이로써 제대는 예수님께 대한 추억을 되살리는 하나의 상징물, 파스카 신비를 연상시키는 기념물로 인식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을 축성하는 예식 때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제대 축성이고, 성당이 허물어진 후 그 자리를 보존할 때도 유독 제대가 있던 자리를 신경써서 보존하는 것입니다. 성당이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요, 또 그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곳이 제대인 까닭에 성당의 중심은 언제나 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실과 제대의 관계



감실은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입니다. 성체를 따로 모시는 까닭은 병자를 위해서, 어떤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여하지를 못하는 신자에게 또는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미사 때 신자들을 위해 충분한 제병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하여, 또한 미사 때 남은 성체를 보관하기 위하여서도 감실은 이용됩니다. 물론 중세 이후 내려온 관습에 따라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흠숭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미사성제로서의 성체성사야말로 미사 없이 성체께 바쳐지는 경신례의 원천이요 목적이다."「성체공경 훈령」 3항과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2항에 나오는 이 선언은, 성찬례로 대표되는 제대와 성체신심으로 대표되는 감실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즉, 감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그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파스카 신비를 신자들에게 상기시키는 데 그 본래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제대와 연계되지 않은 감실, 성찬례와 상관없는 감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감실이 신자들의 눈을 제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감실의 본래 존재 목적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당 안에서 감실의 위치는?



다시 교도권의 가르침을 들어봅시다.

"신자들이 사사로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성체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각 성당의 구조와 지역 풍습을 감안해서 성체는 제단에 모시든지 혹 성당의 뛰어난 자리에 적절한 장식을 갖추어 모신다"(미사경본의 총지침 276, 1969년).



"성체를 모셔두는 장소는 참으로 드러나는 곳이라야 한다. 동시에 개인적 흠숭과 기도에 적합한 장소로서 신자들이 자주, 쉽게, 효과 풍부하게 성체성사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개인적 경신례로 공경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목적을 쉽게 달성하려면 성당 중앙 자리를 비켜서 소성당을 마련하면 좋겠다"(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9, 1973년).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의 전통에 매달리는 "수구적 전통주의자"도 존재합니다. 이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 따라 개혁된 전례서들 안에도 개혁주의자와 전통주의자들 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위의 두 문헌의 선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세 이래의 전통은 예수님의 현존인 성체가 모셔진 곳이라 해서 감실을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여 왔습니다. 이때문에 이미 앞에서 말한 바대로 감실은 제대를 밀어내고 성당의 주인공인 양 인식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가 대부분의 성직자·수도자들을 위시하여 신자들의 마음 안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이때, 위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대단히 용기있는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성당 안이 아니라 따로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감실을 안치하라고 권고합니다. 파스카 신비의 장소인 제대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데 반해 감실은 예수님의 현존이라는 감상적 정서에 호소하므로 신자들의 시선을 더 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당 안에 감실이 있을 때 신자들의 마음은 제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공간 확보가 어렵다거나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성당 안의 뛰어난 자리에 모시라고 교도권은 말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자리"가 성당의 중앙 위치, 즉 제대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제대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경당을 따로 마련하라고 요청하던 교도권이, 제대의 위치를 위협(?)할 만한 중요한 자리에 감실을 배치하도록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자리"란 성당의 제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성체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 기도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자리, 성당의 한 모퉁이 자리와 같은 곳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문헌에서 제대 위에 성체를 모시라는 권고는 중세 이래 내려온 관습을 인정한 것으로서, 전통주의자들과의 타협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에 있는 4대(大) 성당(성 베드로, 성 바울로, 라떼란,성모 대성당)을 위시한 대부분의 전통적 양식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제대 외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빨간 감실등은 눈에 띄지도 않지요. 성당 한쪽 구석에 소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성체를 안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로마 성당들의 구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전례를 거행하지 않을 때는 감실이 중심이다?



전례의 중심이 제대인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례를 하지 않을 때는 감실이 성당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실 안에 예수님의 몸인 성체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성당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왜 교도권이 감실을 가능한 한 경당에 따로 모시라고 권고하는지 생각한다면 별로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실 앞에 앉는 것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위함인데, 제대는 바로 그러한 파스카 신비의 상징 자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제대가 언제나 우리 신앙의 중심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감실 자체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감실 때문에 제대의 중요성이 감소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감실의 위치를 현명하게 배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 건축의 책임자들에게 드리는 제언



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당을 건축하는 데 있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당의 구조가 신자들의 신앙을 올바로 이끌 수 있도록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찬 전례가 이루어지는 제대와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의 중요성이 부각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감실을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배치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혼동을 겪지 않도록 감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감실이 있는 경당을 제대 근처에 마련하여 사제가 쉽게 감실 경당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미사중 성체를 가지러 가거나 남은 성체를 다시 갖다놓을 때 불편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성당 안의 넓은 공간보다는 아늑한 분위기의 경당에서 더 쉽게 성체조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당을 지을 때 감실을 위한 경당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회의실과 각종 목적의 공간들을 확보하는 데 쓰는 신경의 약간만 감실 경당의 마련에 기울인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좀더 균형잡힌 것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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